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가?

내 선택이 틀렸다면?
확신없는 길에서 홀로 걸을 수 밖에 없다면?

금융IT FEP 대외접속 개발 및 운영. 내가 맡고 있는 직무다.

쉽게 말하면, 금융기관과 금융기관 사이에서 주문, 체결, 시세, 잔고 같은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신 게이트웨이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일이다.

전통적으로 이 직무를 맡는 사람은 적다. 늘 개발 업무가 쏟아지는 영역은 아니지만, 장애가 발생하면 가장 크리티컬한 영역이다. 인원이 너무 적으면 안되지만, 그렇다고 많을 필요는 없는 그런 직무.

나는 결과적으로는 niche 영역에서 꽃을 피웠다 생각하지만, 여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늘 고민뿐이었던 것 같다.

내 영역은 과연 옳은 길일까?
(당시 대세였던) Spring, Node.js 같은 최신 트렌드를 따르지 않아도 될까?
C, C++밖에 모르는데? 시장의 니즈에 과연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

“만약 틀린 선택이라면?”

금융IT 직무에 일하면서 늘 스스로에게 물어봤던 질문들.
내가 개발자 시장의 경로를 이탈한 것은 아닐까.

금융IT를 꼭 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연구실에서 경험한 분산처리나 얼굴인식 등 기술기반 IT회사도 선택할 수 있었다.
잘 모르던 시절에는 이클립스 같은 IDE를 사용하면 high-level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야하는 줄 알았다.

그저 익숙한 vi 에디터가 좋았고, low-level 영역이 그나마 내가 잘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그래서 퇴근 후에는 집에서 Spring Boot 강의를 켰다.
회사에서는 하루 종일 C 데몬과 전문 로그를 보고 왔는데, 집에서는 Controller, Service, Repository 같은 단어를 보고 있었다.

이상했다. 내가 지금 내 길을 넓히는 건지, 내 길을 못 믿어서 도망치는 건지.

증권사 시절, 타직무로 빠졌을 때는 더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FIX 프로토콜 데몬 등 어느정도의 기존 업무는 있었지만, 난생 처음 맡게 된 새로운 업무들은 나를 더 흔들었다. 해외주식? 해외선물? 비즈니스 로직을 이제와서 나보고 익히라고?
결정권이 전무했던 나는 그저 회사의 부속품이며 회사 사정에 맞춰야하는 존재였다.

어느 날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 헤드헌팅을 받았다.
당연히 면접 준비를 했지만, 실제 면접에서는 내 생각보다 나를 평가하는 시선이 좋았다.

증권사의 아키텍처를 손으로 그릴 수 있었다. 시세와 주문 체결 데이터의 흐름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수많은 자산운용사와 증권사를 돌며 개발했던 코스콤 연계 대외접속 프로그램 경험은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인정받았다.

불안한 마음에 익혔던 각종 언어와 테크닉들을 개발 업무에 적용할 수 있었다. 국내외 브로커간 세션 연동 후 FIX 데이터 송수신 프로그램 개발경험과 지식은 현 직장의 API를 개발할 때 쓰였다. 해외주식, 해외선물 등의 비즈니스 로직 개발경험은 중개사 업무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내 모든 시간이 값어치 있었다.

당시엔 몰랐다. 그저 갈 수 있는 길, 할 수밖에 없던 길에서 살아남으려고 했을 뿐인데.
나에겐 운이 있었다. 하지만 그 운에 도달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다.

늘 외줄타기 위에서 선택이 필요했다.
확신보다는 불안이 많았고, 자신감보다는 의심이 많았다.

하지만 이 영역을 고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돌아보면 나는 개발자 시장의 경로를 이탈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조금 다른 레이어로 내려가 있었을 뿐이다.

남들이 많이 걷는 길은 아니었지만, 이 길은 나에게 깊이를 만들어 줬으니까.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가?
이제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맞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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