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과 자격지심. 그리고 자의식 해체#2 – 고통의 시기

내 20대는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그 시기를 [연속된 패배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그 시기에 연이은 패배와 좌절을 겪었다. 작은 성공의 기쁨조차 느끼기 어려웠고 누적된 패배는 내 자존감을 바닥 밑 지하까지 끌어내렸다.

다행히도 내 강점인 메타인지가 늘 발휘되었는데, 감정이 격해질때마다 나는 늘 한 발 물러나 상황을 관찰했다. 언제나 상황을 뒤집을 해결책을 생각해야했고, 그로인해 내 뇌는 한 순간도 쉬지 않았던 것 같다. 이 행위들은 이성의 작동보다는 아마 살고자하는 본능의 발현이지 않을까.

전역 후 24살~: 난 늘 거부감이 있었다. 나 역시 모두가 하는 것처럼 학점의 노예가 되어 normal 트랙의 대기업/공기업 루트를 타야할까? 일단 뭐라도 하려면 학점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했다. 이런 것도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위 작업을 하는 동시에, 나는 남들이 가는 normal 트랙이 아닌 내가 본능적으로 원하는 niche의 영역을 찾으려고 나도 모르게 눈을 돌리고 있었다.

GPU 병렬처리연구실. 처음 보는 분야. 당시의 내게 CPU보다 수십 수백배 빠른 연산이 가능하다는 점은 꽤 매력적이었다. GPU로 게임이 아닌 무언가를 해본다는 그 경험. 선린에서도 이런 기분은 느껴보지 못했다. 이때 겪은 low-level 영역의 개발경험은 내 개발자 커리어의 토대를 마련해 준 귀한 첫걸음이 되어주었다.

25살 첫연애: 첫 연애가 허무하게 끝났다. 고통스러웠다. 끝없는 자격지심이 내 심장을 파고 들었다. 이유를 알아야했다. 왜 이 연애가 끝났고 내가 한 행위들은 뭐였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를 다시 만나야했다. 이때 오주원의 차머스라는 구 사이트에서 전문가의 분석을 받았다. 놀랍게도 나는 진화심리학 기반의 이론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모든 현상에 이론을 붙이는데, 사랑에 적용 못 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

또 다시 내 뇌는 멈추지 않았다. 밤낮 구분없이 이론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희망을 가졌다.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재회에 실패했다. 좀 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 본능은 이성의 행동을 쫒아가지 못했다. 당시의 내 그릇이 너무나 작고 연약했기에. 하지만 난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은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26~29살 방황기: 두번째 연애가 끝났다. 오주원의 도움을 다시 받았지만 또 실패했다. 아팠지만 견딜 수 있었다. 내겐 연애의 마스터키가 조금씩 쥐어졌고 여전히 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고 믿었으니까. 다음 연애는 꼭 실패하지 않으리라. 그러려면 눈에 보이는 객관적 가치를 높여야했다. 그래야 내 자존감이 올라올 것 같아서. 그래야 12살에 잃어버린 자신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때부터 normal 트랙으로 대기업 진입을 시도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내겐 연속된 패배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GPU병렬처리연구실도 그만둔다.) 겨우 쌓아올린 자존감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내렸다. 열등감자격지심이 동시에 맞물려 폭발한다.

“내가 니들보다 뭐가 부족한데? 왜 난 안되는데?”

수없이 많은 서류전형, 코딩테스트, 1차 면접, 운좋게 올라간 몇개의 최종면접. 여전히 실패한다.
누적된 실패의 고통 때문이었을까. 내 뇌는 악순환의 미로에 빠져있었다. 부정적인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자신감이 없었다. 내 작은 자존감의 그릇은 나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제일 친한 친구에게도, 부모님에게 조차도.

그렇게 3년간의 취업 패배가 이어져온 29살의 마지막 날, 나는 본능적으로 다시 한번 자의식을 해체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