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과 자격지심. 그리고 자의식 해체#1 – 10대 시절

내게 있어 ‘열등감‘과 ‘자격지심‘이란 내 평생에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열등감(컴플렉스). 타인과의 비교로 인해 얻는 내 무언가의 무가치함.
자격지심. 내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자기불만족. 자책감과 다르지만 비슷한 의미.

이 두가지는 내 학창시절부터 사회생활 초년기까지 나를 끝도 없이 괴롭혔지만 동시에 ‘결핍 as fuel’ 이라는 동력원으로써 내 삶을 이끈 결정적인 원료이기도 하다. 내 자기객관화 회로는 이때부터 생성되었을 것이다. 타임라인순으로 과거에 임팩트있던 순간을 나열해보며 내 기억을 정렬해본다.

12살 초등학교 5학년: 부모님의 이혼은 내게 그리 큰 충격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이때부터 내 마음가짐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확실하다. 이전까지 나는 학급 반장/부반장을 놓치지 않았고 남녀가릴것 없이 인정받는 학급의 리더로써 지냈던 것이 기억난다.

다만, 이 날 이후로 나는 리더십을 포기했고 내가 앞에 나섬으로써 발생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사전에 차단했다. 내 환경이 남들과 ‘다르다‘라는 것을 이때부터 인지했던 것 같다. 다행히 어릴때는 고작 이 정도의 발현. 단, 초등학교 6학년때 ‘친했던’ 여자아이에게 들은 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너 예전엔 공부도 잘하고 되게 멋있었는데 요즘 엄청 조용하고 별로야.”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과거 높았던 내 자존감은 이때 내려간 후 쭉 유지되지 않았을까 싶다. 내 최초의 열등감의 기억. 역설적으로, 이때 이후로 난 스스로를 객관화하기 시작한 것 같다.

14살 빛의 원형 – 상위 존재의 첫 모델: 중학교 입학 후, 내 인생의 큰 틀에 있어 목표설정에 상당한 영향을 준 사람을 만난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크게 봉천동, 낙성대동, 그리고 남현동 출신의 아이들이 모였다. 당시의 내게 있어 ‘남현동 아이들’은 기존 나의 환경에서 겪어왔던 아이들과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들이었다.

깨끗한 피부, 가지런한 머리와 예쁜 외모, 그리고 높은 지능. 그 중 최고였던 아이를 나는 동경했다. 난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 아이는 그때 처음봤다.

그 아이가 나를 동등하게 대해주는게 좋았다. 지금처럼 명확한 생각 자체를 할 순 없었지만 나에게는 막연하게 ‘그녀와 같은 위치에 서고 싶다. 그들처럼 되고싶다’ 라는 꿈이 있었다. 이것 역시 자의식 해체의 한 종류 아닐까.

그 아이의 마지막 기억이 나의 자신감없던 시절의 모습이라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나에게 이런 세상이 존재함을 느끼게 해준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15살 소중한 친구와 이별: 최초 발현한 자책감. 내 탓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탓인것 같았다. 소중한 친구가 반에서 떨어져나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의 무력감을 느꼈다. 그리고 되찾고자 했다. 다행인 점은, 나 이외의 같은 생각을 한 친구가 더 있었고 그 친구와 함께 우리는 연락을 유지할 수 있었다.

25살에 그녀의 축복을 빌어주고 한동안 연락을 못하다가 최근, 15년만에 그 친구의 목소리를 들었다. 여전히 밝은 목소리. 내적으로 더욱 성장한 듯한 그 친구의 인사에 난 눈물이 날것 같았지만, 금세 미소를 띄고 오랜시간 안부를 나누었다. 그동안 잘 지내줘서 고맙다.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시절: 처음 느낀 자격지심. 난 내가 컴퓨터 분야에서 최고인 줄 알았다. 우물안 개구리가 바로 나였구나라는 것을 최초로 인식하였고 내가 모르는 세계가 너무 많다라는 것을 주변으로부터 늘 느꼈다.
같은 목적으로 모여온,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입학한 같은 나이의 학생들. 이들로부터 내가 얻은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으며 현재까지 유효하다.

이 시절의 동력이 현재의 내가 이룬 성취의 큰 발자국이 되었다는 것을 확신한다. (선린시절의 발판으로 내 인생의 track은 바뀌었다)

아직 결핍 as fuel로 전환되기 전인 10대 시절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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